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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뷰] 라틴어 수업 - 한동일

Swimjiy

April 05,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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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게 된 계기와 짧은 평가

교보문고 인문학 가판대에서 이 책을 접했습니다. 제목이 라틴어 수업인데 인문학 구역에 있는 것이 흥미로워서 그 자리에서 몇 페이지 읽어봤는데, 쉽게 읽히고 중간에 나오는 라틴어를 나중에 써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유치한 생각이 들어 구매했습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지금, 실제 강의를 들은 학생들도 그렇게 느꼈을지는 모르겠지만 기억나는 라틴어 단어 는 몇 개 되지 않습니다. 알고 있는 단어마저도 희미하게 남아 누군가에게 자랑하기도 애매한 정도입니다.

남은 것은 삶에 대한 약간의 생각, 그리고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응원받았다는 느낌 정도가 되겠네요.


좋았던 점

<라틴어 수업>은 저자인 한동일 교수님이 실제 서강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던 '초급·중급 라틴어' 수업 내용들을 정리한 책입니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다 보면 종종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듯한 문장을 마주합니다. 그리고 당시 그 이야기의 대상인 학생들이 제 또래라 더 내용이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이 책은 누군가에게 무작정 위로를 건네는 책은 아닙니다. 더불어 '나는 이렇게 성공했다.' 식의 경험담도 아니고요. 라틴어에 담긴 의미와 우리보다 더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공유하며 거기에 저자의 생각을 덧붙이는 정도입니다.

<라틴어 수업>이 지닌 가치는 누군가에게 정답을 제공하는 게 아니라 생각할 여지를 남겨주는 것에 있습니다.

사실 언어 공부를 비롯해서 대학에서 학문을 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양적으로 늘리는 것이 아니라 '틀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학문을 하는 틀이자 인간과 세상을 보는 틀을 세우는 것이죠.

27p.

위에 나온 문장처럼 제게 이 책 또한 세상을 살며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고민들을 내가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마음의 틀을 다시금 잡아주는 책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정론이 아닌 화두를 제시하는 책이었습니다.

요즘 전공이 아닌 다른 분야로 취업을 해서 그런지 내가 4년 동안 뭘 배웠나 하는 공허한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마치 베란다에 남겨진 물건들처럼 공부는 했지만 쓰이지 않는 이 지식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에 대한 고민들이죠.

그런 자잘한 고민들이 이 책을 읽고 나서 안개가 걷힌 것처럼 해결되진 아니지만, 적어도 이 고민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새로운 관점을 생각할 수는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라틴어 문장들을 만나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라틴어는 고사하고 언어를 배우는 재능은 영 없지만 그래도 '뭔가 있어 보이는' 문장들을 만나는 건 참 재밌었습니다. 나중에 꼭 써먹을 일이 생기면 좋겠습니다.

Deus non indiget nostri, sed nos indigemus Dei. (신이 우리를 필요로 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필요로 한다.) - 135p

Si vales bene est, ego valeo. (당신이 잘 계신다면 잘되었네요, 나는 잘 지냅니다.) - 144p

Delige et fac quod vis.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 - 266p

Alea iacta est! (주사위는 던져졌다. 가라!) - 266p


마무리

진로나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2,30대 또는 생각할 거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모든 분들께 추천하는 책입니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공감했던 문장들을 소개하며 이만 글을 줄이겠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이유는 회사는 그만두면 근속연수에 따라 퇴직금이라도 받을 수 있지만 공부는 중도에 그만두면 아무것도 아닌 게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 82p

중요한 건 내가 해야 할 일을 그냥 해나가야 한다는 겁니다. 내가 어쩔 수 없는 일과 내가 할 일을 구분해야 해요. 그 둘 사이에서 허우적거리지 말고 빨리 빠져나와야 합니다. - 86p

안정적인 삶, 평온한 삶이 되어야 그때 비로소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요. 이것은 착각입니다. - 87p

함께하고 더불어하는 걸 즐거워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함께'와 '더불어'의 가치가 폄하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 147p

다시 말해 저는 상처받은 게 아니라 제 안에 감추고 싶은 어떤 것이 타인에 의해 확인될 때마다 상처받았다고 여겼던 것이죠. - 25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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